10/25/2010

통독 20주년 기념 국제공동학술회의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과 극동문제연구소는 독일 통일 2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 통일의 정치 : 한반도에 주는 교훈”이라는 주제로 10월 15일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공동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극동문제연구소 이수훈 소장의 개회사와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발터 클리츠의 환영사로 회의가 시작되었고,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독일대사의 축사가 이어졌다.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재무담당 이사 및 전 독일 자민당 전임 원내대표인 만프레드 리히터는 “통독 20년”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통일 과정에서의 핵심 이슈들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리히터 이사는 베를린 장벽이 지어질 무렵 12살 소년이었지만, 통일 협상 과정에서는 자민당 원내대표로서 참여했다. 그는 빌리 브란트 정부가 연금혜택 연령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서독간 친지방문 등의 신동방정책으로 인해 70년대 통일 과정에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과 개혁 정책에 힘입어, 구동독인들의 분노가 마침내 독일 분단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을 이끌어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리히터 이사는 독일 통일의 가장 큰 부담은 정부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인접국들이 통일 독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주변국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게 필요했다. 동시에, 수많은 고학력 동독 청년들이 통화개혁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독일 마르크화가 통용되는 곳 (구서독지역)으로 떠날 것이라고 압박을 가해왔다.  소련의 세력이 점차 약해져 가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시간적 압박도 문제였다. 독일 통일을 위해서는 다수의 문서상에 소련의 서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리히터 이사는 독일 통일 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독일의 “내적 통일”은 다음 세대가 되어야 완전히 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백만명의 삶이 20년 전보다 나아졌음을 상기하며 “통일 비용은 높았지만 그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이라고 결론지었다.
 
제1회의 “글로벌지역 맥락에서의 통일”에서 우베 비센바흐 주한 EU 대표부 대사대리는 “유럽통합과 독일 통일”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독일 통일은 다시 재현되기 어려운 흥미로운 성공 스토리라며 이는 유럽통합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또한 독일 통일은 통일 이전에 추진된 유럽 공동체, NATO, 서독의 동방정책, 소련 사회주의 위성국가들의 붕괴로 인해 비로소 실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북아시아도 경제적으로 통합되어가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안보와 협력의 아젠다를 추진해나가려면 좀더 높은 신뢰감과 정치적 의지,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다. 비센바흐 대사대리에 따르면, 역내 정치통합은 정기적으로 발목이 잡혀왔으며, 아시아의 정치적 통합을 위해서는 “행복이 힘의 균형에 기반한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최고조로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각국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중국, 일본, 한국을 초청, “ASEAN+3”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이 ASEAN이기 때문에 ASEAN이 동북아 지역의 협력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며,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의 상호작용, 다양한 상황 속에서 아시아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정치, 경제적 통합의 문제들”이란 주제로 열린 제2회의에서는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전임장관을 지낸 클라우스 골러트 박사가 “독일 통일과정에서의 정당들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골러트 박사는 구 동독 출신으로 구 동독내의 평화적 혁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의사 출신의 정치인인 골러트 박사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골러트 박사의 발표에서는 동독의 정치지형과 정당의 역할에 대한 독특한 식견이 제시됐으며, 동독 정당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과정, 문제점, 그리고 사회주의 통일당의 당원이 아닐경우 겪게되는 문제들이 다뤄졌다. 실제로 그는 사회주의통일당 가입에 대한 압력을 피하기 위해, 그와 그의 가족에게 많은 불이익을 감수한 채 군소 정당인 “국민당”에 입당하였다. 골러트 박사는 이같이 정치적으로 활발히 활동한 사람들이 훗날 동독을 사회주의 독재국가에서 자유주의 국가로 전환시키게 되는데, 이들은 사실 직업 정치인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앞으로 독일 사회주의의 종말에 대해 뭐라고 기록하던 간에, 1989년에 구동독에서 일어난 일은 진정한 혁명이었다고 지적했다.  단지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른 역사적 혁명과 크게 달랐을 뿐이란 것이다.

마지막 회의 “시민사회와 통일”에서는 “독일 통일의 사회적 효과”란 제목으로 라인하르트 쉴링커드 독일 인프라테스트 디맙 정치선거조사연구소 소장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쉴링커드 소장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통일 후 20년인 현재의 정치적 분위기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는 150명 이상이 참여해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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